Pensées
1.
초등학생 때 게임 개발을 시작하여, 개발자로 살아온지 어언 10년 이상이 흘렀다. 내가 만든 거의 모든 프로그램의 9할은 모든 코드가 협업이 아닌 1인 개발에 의해 작성되었는데, 이는 동기가 어떤 공학적 문제 해결에서라기 보다는, 내가 발견하고 정의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복합적인 강력한 동기가 작용하였기에 가능했던 생산성일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은 그 자체가 수많은 관측가능한 문제를 반복적으로 생산하기에, 아마 그것이 즐거웠을 것이다.
2.
얼핏 생각해보면 인문학을 공부해보겠다는 결심은 고등학생 때부터 있었다. 컴퓨터 프로그램 속 문제는 컴퓨터에 의해 생산되지만, 컴퓨터 프로그램이 영향을 끼치는 범위는 인간, 나아가서는 사회라는 것을 얼핏 깨닫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때부터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인간의 언어와 비슷하게 바라보고자, 어떻게든 연속성을 찾고자 많은 글을 읽었다.
비트겐슈타인 — 내 첫번째 철학자. 그림이론: 실재하는 것에 대해 언어로 서술하는 것이 철학이 할 일. 언어는 존재하는 것을 서술하는 존재이니,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침묵하라.
본래적으로 완전히 개념화, 통제할 수 없는 연속적인 세상을 언어로 서술하는 순간 실재와 다르기에 언어 자체에 한계가 있다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일 것이다. 프로그래밍 언어 그 자체가 지시하는 것은 귀결적으로는 기계어다. 매우 통제적이고 개념적이다. 인간의 자연어와는 다르다. 쉬이 떠올릴 수 있는 단어와 문장들은, 생동하는 맥락 없이는 아무것도 전달할 수 없다.
3.
더불어 어떤 지점에서 프로그래밍 언어와 그에 의해 작성된 알고리즘이 인간의 삶에 연속성을 가지는가? 쉬는 시간의 대부분을 Youtube, Instagram과 같은 알고리즘을 헤엄치며 고독, 또는 심심한 시간에서의 실존을 무료로 외주한다. 이렇게 외주화된 나는 알고리즘에 의해 형성된다. 프로그래밍 언어가 지시하고 있던 것이 실재 세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뇌에 영향을 주는 프로그래밍 언어는 분명히 어떤 지점에서는 실재 세계와 연속성이 있을 것이다.
4.
이 충돌의 지점을 상상할 수 있는 지점에서 LLM의 언어 생산물을 전적으로 프로그래밍 언어에 미루어보자. 사실 내가 관심있는 지점은 이것이다. ChatGPT, Claude가 발화하는 언어의 원초적인 지점은 큰수의 차원으로 이루어진 행렬의 수치의 불연속이다. LLM은 본래적인 발화지점이 관측 가능하며 확률적이고, 컴퓨터는 완전한 의미에서의 확률을 만드는 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LLM의 발화는 재현가능하다.
5.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이성(logos)은 근대를 거쳐 돈의 모습으로, 이제는 하버마스적인 도구적 이성 전반을 외주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는 AI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고 본다. 비이성의 영역에서 아도르노와 같은 학자가 기대하는 삶의 모습은 니체, 프로이트, 헤겔과 같은 사람에게서 찾아진다. 또는 주술, 신비와 같은 이름으로, 객체가 주체와 동등한 지위를 가진다는 형태로 읽힌다. 하버마스는 도구적 이성과 의사소통적 이성을 구분하여 후자의 중요성을 복창한다.
6.
더이상 인터넷에서, 책에서 읽는 언어가 발화하는 지점이 인간의 뇌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인식적으로 절대 판별 불가능하다. 2022년 이후 발견되는 모든 글, 영상, 노래는 언어의 발화지점은 본질적으로 수상하다.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사장님이 YouTube playlist로 카페 추천 노래를 틀고 있는데, 아무래도 AI 생성 음악인 것 같다. 뚜렷이 인간의 이성은 발화지점이 수상한 것을 명석판명히 밝혀낼 수 없다. 프로그래밍 언어에 익숙했던 나는 발화지점이 명확한 언어에 대해 자신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언어, 음악, 영상 전체가 수상한 세계에서 사는 법에 대해 고민했던 적은 없다.
7.
나는 서울가옥이라는 회사에서 주택을 짓는 AI를 만들고 있다. 건축, 글, 이미지, 영상, 소리 등 현대시대에 감각으로 접하는 경험의 출처가 아득히 흐릿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이 구조적 변동에 대한 한 종류의 안경을 제공한다. 이 전체가 이성의 발전적 운동이라는, 비이성에 대해 천천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8.
앞으로 긴 기간동안 인간은 도구적 이성(logos)의 발화 명세를 명료하게 작성하여 AI에게 외주하여 자본(capital)을 추구하는 방향이 세상과 가장 밀접히 관계맺을 수 있는 태도일 것이다. 이를 위한 자기회귀적 계몽의 길은 분명히 충분히 고독해지어 가장 수상하지 않은 발화체인 ‘나’에게서 찾아나가고자 노력해보는 것이 좋겠다. 또, 실제 사람의 경험을 존중하는 대화 또한 좋은 발전의 길일 것이다. 아니, 사람과 대화하는 데 그것이 어찌 수상한가? 이 글은 내 손으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