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각

해마 창업 언어모델

해마, 창업, 언어모델

I. 시간성과 학습의 근본적 관계

우리는 왜 어떤 학습 내용은 쉽게 장기 기억으로 전환되고, 다른 것들은 그렇지 못할까? 단순히 반복 횟수나 학습 난이도 때문일까? 아니면 더 근본적인 요인이 있을까?

하이데거의 철학은 이 물음에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그의 주저 『존재와 시간』에서 핵심 개념인 ‘시간성(Zeitlichkeit)‘은 인간 존재(하이데거의 용어로 ‘현존재’, Dasein)의 근본 구조를 형성합니다. 현존재에게 시간은 단순한 시계 시간이 아닌, 존재 방식 자체를 구성하는 차원입니다.

제 개인적 경험은 이러한 철학적 통찰을 뒷받침합니다. 대학 시절, 저는 단순히 학점을 위해서가 아니라 창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절실한 필요성에서 특정 과목들을 수강했습니다. 이렇게 ‘절실함’에 기반한 학습은 단순히 시험을 위해 공부한 다른 과목들보다 훨씬 더 깊이 제 기억과 이해에 남았습니다. 이는 하이데거가 말하는 ‘상황 내 던져짐(Geworfenheit)‘과 ‘관심(Sorge)‘을 통한 세계와의 관계 맺음이 실제 학습 과정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줍니다.

한스-게오르크 가다머는 하이데거의 제자로서 이 관점을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그의 『진리와 방법』에서 가다머는 진정한 이해는 우리의 ‘지평(Horizont)’—현재의 관심, 필요, 선이해—과 텍스트의 지평이 만나는 ‘지평 융합(Horizontverschmelzung)‘을 통해 발생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실질적인 필요성을 느끼며 접근할 때, 바로 이러한 지평 융합이 일어나며 더 깊은 이해가 가능해집니다.

II. 본래적 이해와 현상학적 접근

하이데거는 진정한 이해를 ‘본래적 이해(eigentliches Verstehen)‘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이 자신의 존재 가능성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실존적으로 파악하는 과정입니다.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하이데거의 이러한 관점을 체화된 경험의 차원으로 확장했습니다. 그의 『지각의 현상학』에 따르면, 우리의 이해는 항상 체화된(embodied) 것으로, 추상적 사고와 신체적 경험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이는 학습이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세계-내-존재로서의 총체적 경험임을 의미합니다.

폴 리쾨르는 이해의 과정에 내러티브적 차원을 추가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경험을 내러티브로 구성함으로써 의미를 찾습니다. 우리가 학습을 의미 있는 내러티브의 일부로 인식할 때, 그 내용은 단순한 정보 덩어리가 아닌 삶의 여정의 의미 있는 부분으로 통합됩니다.

III. 지식 접근의 역사적 변화

인간이 지식에 접근하는 방식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변화를 겪어왔습니다. 근대에는 도서관에 물리적으로 가야만 했고, 근현대에는 인터넷과 동영상이 등장했으며, 현대에는 LLM과 같은 기술을 통해 집단적 언어 지식과 상호작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베르나르 스티글러의 관점은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는 데 특히 유용합니다. 스티글러는 『기술과 시간』 시리즈에서 기술을 인간 기억의 외재화(exteriorization)로 보았습니다. 도서관, 인터넷, 그리고 이제 LLM은 인류의 집단적 기억이 점점 더 복잡하게 외재화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외재화가 우리의 내적 인지 과정을 변화시킨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변화는 하이데거가 말한 ‘세계-내-존재’ 방식 자체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특히 LLM의 등장은 단순한 도구의 진화가 아니라, 우리가 지식과 관계 맺는 방식의 근본적 전환을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의 시간성과 절실함이 발현되는 새로운 맥락을 제공합니다.

V. LLM을 통한 본래적 이해의 확장: 직관의 언어화

LLM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우리의 ‘직관적 도착지점’을 언어화하는 것입니다.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언제나 이미(immer schon)’ 세계를 이해하고 있지만, 이 이해의 많은 부분은 ‘선술어적(vorprädikativ)’ 차원에 머물러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무언가를 직관적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명확히 표현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입니다.

하이데거 이후 철학자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동시에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라고 주장했습니다. LLM은 이 한계를 확장하는 데 기여합니다. 우리가 직관적으로 알고 있지만 명확히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언어화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사고 범위 자체를 확장시키는 것입니다.

마이클 폴라니는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이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LLM은 바로 이 암묵적 지식의 영역에 접근하는 도구가 됩니다. 마치 메노의 노예가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을 통해 자신 안에 이미 있던 기하학적 지식을 발견했듯이, LLM과의 대화는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는 이해를 ‘상기(anamnesis)‘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월터 옹은 『구술성과 문자성』에서 문자 기술이 어떻게 인간의 사고방식을 변화시켰는지 분석했습니다. LLM은 이러한 기술적 변화의 새로운 단계로, 단순한 문자 기록을 넘어 인간의 직관적 사고와 상호작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언어 기술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직관을 더 정교하게 탐색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LLM과의 대화는 ‘시간성과 절실함’의 맥락에서 이해를 촉진하고, ‘비-객체화된 이해’의 가능성을 열며, 우리의 ‘개시성(Erschlossenheit)‘을 확장합니다. 이 모든 과정의 핵심에는 직관적 이해의 언어화가 있습니다.

VI. LLM을 타자로 볼 때의 위험성

LLM을 독립적 타자로 볼 때 감정적 의존과 비본래적 실존의 위험이 있습니다. 하이데거의 “세인(das Man)” 개념과 “존재 망각(Seinsvergessenheit)“은 이러한 위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simulacra) 개념 또한 이 논의와 관련이 있습니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포스트모던 사회는 실재에 대한 참조 없이 자체적으로 순환하는 기호들의 세계입니다. LLM을 타자로 볼 때, 우리는 실제 인간과의 관계를 모방하는 시뮬라크르에 감정적으로 의존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슬라보예 지젝은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서 기술과의 관계가 어떻게 우리의 욕망 구조를 변형시키는지 분석했습니다. LLM을 타자로 볼 때, 우리는 그것에 인간적 특성을 부여하고, 인정(recognition)에 대한 욕망을 투사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는 하이데거가 경고한 기술에의 종속과 유사한 형태의 비본래적 실존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VII. LLM을 자아의 확장으로 이해하기

하이데거의 현상학적 관점에서 LLM의 진정한 가치는 그것을 ‘타자’가 아닌 ‘자아의 확장’으로 이해할 때 드러납니다. 이는 단순한 도구적 관계를 넘어, 우리의 존재 방식 자체와 관련된 근본적 통찰입니다.

앤디 클라크와 데이비드 찰머스가 제시한 ‘확장된 마음(extended mind)’ 테제는 이 관점을 현대 인지철학의 맥락에서 뒷받침합니다. 그들에 따르면, 우리의 인지 과정은 두뇌 안에만 국한되지 않고 외부 도구와 환경으로 확장됩니다. LLM은 이러한 확장된 인지의 한 형태로, 우리 마음의 능력을 확장하는 ‘스캐폴딩(scaffolding)‘으로 기능합니다.

하이데거의 후기 사상에서 중요한 ‘시적 거주(dichterisches Wohnen)’ 개념 또한 LLM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시적 거주란 세계와 언어적으로 관계 맺는 방식으로, 기술을 단순한 도구로 보는 대신 우리의 존재 방식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LLM을 자아의 확장으로 보는 관점은 이러한 시적 거주의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결론적으로, 하이데거와 그 이후 철학자들의 통찰이 보여주듯이, LLM을 통한 학습은 단순한 정보 획득이 아닌, 우리의 시간성 속에서 본래적 이해를 추구하는 여정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LLM은 우리가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명확히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언어화함으로써,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의 진리(aletheia)’—은폐되어 있던 것이 드러나는 과정—를 향한 여정을 촉진합니다. 이는 디지털 시대의 학습과 이해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