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각

인간 디지털 트윈

적어도 1년 안에, 어쩌면 지금도, 인간이 경제활동을 목적으로한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때 가지고 있는 해자(moat)는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언어로 밝힐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하지만- 남들보다 우월한 것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어떤 이는 선물시장에서 돈을 벌고, 어떤 이는 에이전트에게 모든 노동을 맡길 수 있으며, 어떤 이는 AI를 실행조차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휴대폰 보급율은 95%~99%로 세계최고라는 것을 고려하면, 휴대폰을 사용하지 못하는 환경적인 문제는 제외하여보자. 휴대폰에서 인터넷이 접속된다면, 이를테면 여러 수단을 활용해 부를 축적하는 것이 쉽다. 잘 정제된 질문만 존재하면, 지식노동에서의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는 시대다. 아마 지금은, 질문의 값어치가 매겨지는 시대일 것이다. - 이를테면 폴리마켓을 보라, 세상에 존재하는-생동하는 질문들과 대답쌍에 값어치가 매겨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얼마나 좋은 질문을 하느냐는 어떻게 판명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여러 사람을 인용할 수 있다. (아마도,) 도가적으로, 기인점에 해당하는 ‘도’, 플라톤적으로 ‘이데아’, 칸트적으로 ‘물자체’, 비트겐슈타인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 리쾨르적으로 ‘자기이해에 기반한 질문’, 하이데거적으로 ‘현존재의 존재이해’, 심리학의 ‘메타인지’, 많은 사고의 틀이 존재하오나 그 어떤 시대보다 좋은 질문과 부가 가까워졌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좋은 질문을 하고, 지능의 레버리지를 사용하여, 답을 찾아간다. (실제로 이는 10,000원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input-output이 생긴다면 어쩌면 무궁무진한.)

조금은 현실적으로 돌이켜보면, 좋은 사람과 관계 맺고 좋은 공간에 있어야 좋은 질문이 나오는 것 같다. 맺고 있는 오브젝트에서 발견되는 관계를 조금 더 메타적으로 생각할 필요도 있어보인다.

인간 디지털 트윈이란 그렇다. 기본적인 컨셉은 인간의 상태(state)를 모델링하여 건강 문제나 집단 노동을 시뮬레이션하는 등, 디지털 트윈의 활용목적에 맞게 인간을 사용하는 것. 근데 메타적 공간에서 발생한 경제활동이 현실세계에서 값어치를 가진다고 해보자. 이는 현재도 순수 지식노동이 돈을 벌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remote work가 그 예시일 것이다.)

논증이 조금 서툴지만, 글 전반에 걸쳐 말하고 싶은 바는 확실하다. 순수한 지식 노동이 돈을 버는 시대가 저물 때까지, 가장 먼저 메타적 층위에서의 구조를 포착하는 사람의 활동은, 부에 대한 의미로 국한하여, 마치 옛날 1970년대에 한국의 강남 땅을 사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