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각

어쩔수가없다 이방인

어쩔수가없다 포스터

박찬욱 감독, 『이방인』 (2025.09.24 개봉).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 출연.


1000년 전 우리는 나무에 대해 무엇을 알았는가? 100년 전 우리는 나무에 대해 무엇을 알았는가? 지금 우리는 나무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100년 후 우리는 나무에 대해 얼마나 알까? 1000년 후 우리는 나무에 대해 얼마나 알 것인가?

나무는 그렇게 그 자리에 서서 나름대로의 자연적 진화를 계속한다. 우리는 그 앞에서 나름대로 안다고 하는 것, 배운 것을 토대로 나무에 대해 안다고 말한다.

부조리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끽해봤자 사는 100년 정도의 인생 안에 모두들 ‘나’부터 찾으라고 하는데.. 실제로 ‘나’밖에 것도 아는 것이라는게 있기는 한가?

조금 확장해보면 그렇다. 정답(아는 것)이 없다. 한국에서 태어나 대학에 가서 취업을 하는 레파토리까지의 고비들의 필연적-정답적 존재성과 나무가 4가지 원소로 이루어져있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필연적-정답적 존재성, 그리고 각각의 현재적 시각에서 봤을 때의 거짓성.

도덕규범과 인간다움, 가장-다움, 남자-다움.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믿는 가치와 정답들의 근원지가 어디인가? 데카르트적, 칸트적 이성적으로 접근한다고 한들, 내가 그 가치들을 이겨낼 수 있는가? 아마, 어쩔수가 없나보다. 그러하게 살아가는 각자의 삶이란게 있나보다.

태양빛이 너무 눈이 부셔서, 사람을 죽인 뫼르소와 유만수. 이 등장인물은 브레이킹배드의 월터 화이트도 연상시킨다. 세계에 이토록 무관심한 사람과 욕심이 많은 자, 끝없이 배우려는 자와 내가 설정한 삶대로 살고자 하는 이.

나는 그래서 만든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만드는 것이란 다만, 그 당시에 내가 믿는 바를 일시적(temporary)으로 세상에 내보이는 것. 프로그래밍 언어로 동작하는 어플을 짜내고, 자연어로 인공지능과 대화하며 인식을 늘리며, 로봇을 만들어 사람과 상호작용시킨다. 한글로 시(?)를 쓰기도 하며, 사람들과 대화를 만든다. 사람을 어쩔 수 없게 하는 근본적인, 감정적인, 아마 호르몬적인 내 상위 개체의 존재가 있는 것인가?

그래서 뒤의 동사로써의 만든다가 문득 왜, 거기에 철썩-같이 붙어있는지 궁금해졌지만 이내, 감독이 이런 질문을 만드려고 했다는 사실에 고마워한다.

태양, 총, 사랑, 가족,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