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하는 것 생각하는 것 움직이는 것
( )라고 생각한다의 양식을 띄는 괄호 속을 유심히 관찰하여 보면, 그 텍스트가 어떻게 주변과 관계 맺고 있냐에 따라 개발가능한 것, 움직이는 것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평가할 수 있다. 회사를 가면 괄호 디자인이 정말 쉽다. 내 개인적 서사와 연결짓지 않아도, 그래도 그 괄호는 돈과 관계 맺으며 생산성을 띄게 된다.
나라는 개인과 관계 맺는 사회, 의미연관의 집합, 자본적인 것의 전체 의미연관이 나와 어떤 방식으로 해석되어 잔류할까? 나아가서, 이것이 이질적이지 않은 것이 가능키나 할까?
돈은 커다란 관념 세계임은 자명하다. 세상 사람 모두가 나무에서 딴 사과를 인정해주지 않아도, 사과는 그 사과 자체로 의미지닌다. 하지만 돈, (여기서는 화폐라고 하자.) 그것은 어떠한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인정해주지 않을 때 그 가치는 종이로 인정받을 것인가? — 은행 서류 상의 돈은 더 자명할 것이다.
이때 우리는 돈으로부터 오는 괄호에 집중해야 한다. 내 사고의 기인점을 위탁하는 인공지능으로의 확장된 마음의 활용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내 사고의 기인점을 자본적인 무언가와 강하게 결탁시켜야한다.
요즘 내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은 이데아적인 감정 세계이다. 가다머적으로 — 지평 융합의 경험의 연속이 그것이다.
내게 지평 융합이란 관념적인 세계에서 하염없이 — 가벼운 것이었다. 온라인에서의 관념적 오락활동(게임)을 개발하여 백만명과 소통해보면, 그러한 것이 된다. 나는 그러한 지평 융합의 범위를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로 구분하여야 하는 것을 주로 착각한다.
미시적인 것과 거시적인 것은, 관념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으로 치환 가능할까?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닌, 눈에 맺히는 이미지를 물체와 그 물체가 속한 구조로 대하는 것에 대한 인식. 프로그래밍을 도구로써 말하는 인공지능은 가히 엄청나다.
인간의 자연어란 무엇을 지시하는가? 적어도 무한적인 스펙트럼 — 아날로그와 디지털 중 아날로그인 것 — 을 지시한다. 방금 스쳐지나간 미시적인 것이 그러한 것 중 우리가 최대로 발견한 세계이다. 그 세계를 지시하는 자연어가 그 실제 물체와 얼마나 끈적하게 — 붙어있는지에 대한 고찰은 아마 100년 이상 된 주제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 프로그래밍 언어를 통한 사람들과의 지평 융합을 경험하게 된 나는 아마 어렸을 때부터 디지털 적인 것을 지시하는 언어가 가능했음을 무의식적으로 깨닫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쉽게 — 디지털적인 것을 지시하는 언어를 사용하여도 관념적인 소통을 통해 남들과 소통하는 것이 가능하며, 이것이 상대방의 눈을 보지 않기에, 생략되어 버리는 언어의 기능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개발자로써 발휘하는 능력에 대한 회의적 뇌구조해명은 범용적 의미에서 여러 가능성을 함의한다. 가장 크게는 인공지능으로 마음이 확장가능한가? 하는 주제.
당장에 직관적으로 계속 이어나가고 싶은 생각은, 언어를 구분하고 싶은 것이다. 이를테면 당장 내가 컴퓨터에 쓰고 있는 언어는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이 명백하고 엄밀하게 디지털 세계이다. 한글 하나하나는 UTF-8, 그 8비트짜리 공간 속 형태소 하나 하나,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아마, 디지털 세계에서 표상되는 언어들은 그 자체로 힘을 가진다기보다, 그 언어가 눈 뒤에 (현전의 이후 현상이라고 본다.) 맺히는, 관념적인 세상으로 접속하는 가능성을 지니는 — 지시대상이 명확한 가짜 언어라고 몰아붙이고 싶다.
정신 상태를 표현하는 언어는 그것과는 조금 더 구분되는 듯하다.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은 물리적인 것과는 구분되어서, 엄밀한 의미로 디지털 세계적이라고 할 수도 없다.
나아가, 어떤 것을 공부할 때 일어나는 현상은 무엇인가? 애초에, 거대언어모델이라는 것이 생기고 나서 언어를 통한 공부라는 것이 도대체 지칭하는 바가 무엇인가?
그 곳을 직접 찌르기 싫기에 두 가지 생각으로 이 열어젖혀진 장소를 정리하고 싶다.
첫째, 어떤 것을 공부하여 이해하는 것이란 어떤 개념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둘째, 어떤 것을 작성하는 행위는 폴그레이엄식으로 — 생각하는 것 그 자체이다.
아마 인간이 시간성과 관계 맺으며 삶을 산다고 하는 부분에서 인공지능과 다르다고 했을 때, 그 관념적 언어와 아슬아슬히 닿는 곳에서 어떤 것에 지속적으로, 새롭게 익숙해지며 꾸준히 무언가를 작성하는 것, 그리고, 시간성 위에서 인정받고 인정하는 것.